2022년 2월 12일(토) - 2월 20(일)
오후2시 - 오후7시
복합문화공간 피어 컨템포러리
서울시 성동구 성수일로10가길 18 지하
복합 문화공간 피어 컨템포러리 개관전
성수동 메인 스트리트와는 다소 떨어진 성수공단 내 제조공장들 틈에서 복합문화공간 ‘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가 올해 개관했다. 오래된 기계공장의 흔적을 때로는 고스란히 반영한 피어 컨템포러리는 첫 전시로 티파니 리(Tiffany Lee)와 정윤영의 2인전 < In the waiting line >을 개최한다. 오는 2월 12일(토)부터 2월 20일(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가로서 또한 팬더믹 시대의 한 개인으로서 막연한 기다림에 관한 문제의식을 다뤘다.
In the Waiting Line
두 작가는 오랜 기간 미술을 전공으로 공부해왔으며 수년 간 교류하며 서로의 문제의식을 교환하곤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팬더믹 시대의 아티스트’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것이 이 전시의 출발점이 되었다. 회화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오는 정윤영 작가와 다매체를 응용한 작업을 이어오는 티파니리 작가는 더더욱 불투명해진 시대에 어떠한 기다림으로부터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하는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20여 점의 영상, 설치, 회화 작품들은 예술적 신념과 사회적 상황의 간극에 주목하여 풀어냈으며,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를 모티브로 삼아 막연함과 망설임, 기다림 등에 대해 작가적 해석이 돋보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실험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직관적인 2인전
대개의 전시장에서는 복잡한 의미 구조 안에서 작가의 상세한 진술과 이를 꼭 소화해 내야만 한다는 감상자의 강박적인 태도가 서로 뒤얽힌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감상자가 작품으로부터 작은 실마리를 찾아내어 어떤 방식으로든 일상을 비켜간 새로운 사유하게 만든다면 충분하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진솔한 담화로부터 출발하여 기획되었고, 헐거운 의미 구조 안에서 다양한 매체를 재료 삼아 보다 직관적으로 구성되었다. 두 작가의 작품들이 교차되며 설치된 이번 전시는 한 개인으로서 창작과 삶 사이에서의 고민들, 그리고 보다 불확실해진 시대에서의 기다림이라는 키워드에 관해 다각도로 질문하며 이를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정윤영은 동·서양의 안료와 매체를 혼용하는 작업 안에서 너무나 섬세하여 부서지기 쉬운 예술과 삶의 관계나 그 틈새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특히 자신이 경험한 기억들을 소환시켜 추상성이 강한 회화의 형식으로 표현해왔으며, 이러한 회화들은 미학적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정윤영의 [뭉툭하지만 생생한 어떤 것](2022)은 예술과 삶 사이에 존재하는 막연한 기다림에 대한 고민들을 주제로 삼아 보다 다층적 양상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변화하고 유동하는 대상을 정체성이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그것들이 접촉하고 변이하는 과정을 포착하여 구조의 경계를 허무는 일을 작업으로 실천한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시각화된 작업들은 그가 개인적으로 처했던 상황 속에서 오롯이 스스로 경험했던 (개별적이고 내밀한, 그리하여 언어로 온전히 치환할 수 없는) 흔적과 막연한 기다림들을 회화적 제스처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불완전한 생의 조각들을 화면 위에 얇고 두꺼운 흔적으로 계산 없이 축적한 그의 작업들은 평면의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개체들의 유기적 조합으로 인해 시각적 운동감을 전한다. 정윤영은 이러한 생동회화를 선보이며 추상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에 관한 실험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듯 보인다.
정윤영 Yunyoung Jeong
jeongyunyoung@gmail.com
정윤영(b.1987)은 동국대학교 미술학부 졸업 후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대표 개인전으로는 《미완의 단면들》(영은미술관, 2021), 《불투명한 중첩》(갤러리도올, 2021), 《어떤 그늘》(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2021)이 있다. 《낯선 이웃들》(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6), 《BUDDHAS》(불일미술관, 2016) 등 다수의 그룹전 및 기획전에 참여했다.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2021),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2020)의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시청 박물관과, 소피텔 앰배서더, 영은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이 있다.
티파니 리(Tiffany Lee)는 기호학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유토피아적 기호들의 코드를 비틀고 재전유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Happy Birthday Project](2022) 역시 ‘생일’이라는 언어적 코드를 재전유하는 과정을 설치, 영상, 평면 등으로 표현했다.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명확한 상관관계는 없는 ‘부유하는 기호들’은 대상 없는 생일파티를 조금 더 기이하게 만든다.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출생과 죽음 또는 삶과 예술의 중간쯤에서 인지한 아이러니들에서 출발한 이번 프로젝트는 각종 미디어에서 전하는 소식과 실존 사이의 괴리감으로 혼란스러웠던 작가의 감각을 매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했다. 매체가 옮겨가는 과정마다 거듭되는 재전유는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돌림노래처럼 전시장을 떠돌고 있다. 누구의 생일인지, 왜 열리는지, 언제 시작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생일’은 티파니 리의 작업들이 주로 그래왔듯이 화려한 색채 뒤에 자조적인 의문들을 슬쩍 감추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상만을 감상하기엔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는 것은 그저 작가의 의도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정체 모를 생일파티와도 같은) 정체 모를 희망에 대한 기다림이 가득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티파니 리 Tiffany Lee
tiffanyleemm@gmail.com
티파니리는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영국, 일본, 한국 등에서 다양한 프로젝트 및 개인전을 통해 작업을 발표해왔다. 2012년부터 유토피아적 기호들을 재전유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표현해오고 있으며, 특히 구글지도를 기호학적으로 고찰한 ‘Liquid Series’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공예술 사업, 비스타아트 등의 행사에 초대받아 소개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지원을 받아 매체적 실험에 주력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서울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AK갤러리 등이 있다.